이 대통령이 고심 끝에 6월 24-25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나토는 동서냉전이 심화되던 1949년에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창설된 집단방위기구로 유럽안보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91년 소련의 몰락은 나토의 존속에 최대의 위기였다. 나토가 안보위협으로 상정했던 소련이 해체되면서 집단안보를 위한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가입을 직접 요청하기까지 했다.(클린턴 반대로 무산됨)
러시아의 기대와 달리, 나토의 위상은 점점 강화되었다. 1999년에 폴란드,헝가리,체코가 가입하더니 2004년에는 발트해 3국과 흑해 연안의 루마니아,불가리아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최초 12개국이던 회원국은 현재 32개국으로 약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러한 나토의 동진에 대해 러시아는 안보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하여 왔으나 미국이 중심이 된 나토의 동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점에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소련 몰락 이후 유럽에서 진행된 현상변경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proxy war) 성격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바이든 정부는 유럽과 인도태평양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중국,러시아,북한에 대응하는 글로벌 안보체계(GSA) 구축에 주력해 왔다.
이를 위해 2022년에 기존 나토 전략개념을 수정한 ‘NATO Strategic Concept 2022'를 발표하였는데, 중국을 ‘체계적 도전세력(systemic challenge)'으로 새롭게 추가하고 인도태평양지역과 협력강화를 명시하였다.
이러한 바이든 정부의 세계전략에 호응하여, 윤석열 정부는 2023년 7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개별맞춤형협력프로그램(ITPP) 협정체결을 통해 대테러,사이버,신흥기술(EDT) 등 11개 협력과제를 선정하였고 2026년까지 이행을 완료하기로 합의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군사정보 공유망 구축이다. 실시간 비밀정보의 공유, 공통상황도(COP) 활용, 통신프로토콜 일체화, 비밀등급 기준 설정 등을 통해 한-나토 간 군사비밀을 공유하는 체계이다.
나토의 비밀정보망인 BICES(전투정보수집활용체계)와 한국군의 MIMS(군사정보관리체계)를 미군 정보망인 CENTRIX(연합지역정보교환체계)로 연동해 북중러에 대한 위협을 공동으로 평가하고 유사시 신속하게 공동대응한다는 게 최종목표이다.
문제는, 나토를 인도태평양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이러한 협력이 결국 중국,러시아,북한의 강한 반발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나토를 통한 한국 위상의 글로벌화가 동시에 위협의 글로벌화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정학적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의 가치기반 외교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공조차원이라는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나토와의 협력을 통해 우리의 글로벌 위상강화와 방산수출에서 일정한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추진돼 온 나토와의 군사협력은 속도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재집권한 트럼프 정부에서 나토에서의 미국역할 확대에 반대하는 점도 우리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부분이다.
나토와의 군사협력은 외교적 레토릭(rhetoric) 수준에서 관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만일, 트럼프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 대통령의 참석 명분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전략분석가인 로버트 캐플란(Robert Kaplan)은 <지리의 복수(The Revenge of Geography)>에서 ‘지리는 운명이다’고 전제하면서 ‘한국은 지정학적 억눌림의 교차로로서 외교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식 외교에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명분보다 실리(국익)를 잘 챙기는 우리식 토종 외교모델을 찾았으면 한다.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언제 힘들지 않은 적이 있었나.
25. 6. 22
한국국가이익연구소(KINI) 소장 박영준
(이글은 카톡채널 K-국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6.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하면서 세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F-35I (I, 이스라엘 의미)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해, F-15I/16I 및 무인기 등 200여 대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 4곳(나탄즈, 이스파한, 포르도, 아락 등)을 전격적으로 공격하였다. 이 시설들을 정밀폭격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공격기들이 표적 가까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는데, 사전 SEAD 작전을 통해 이란 방공망을 제압함으로써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사용된 항공폭탄은 JDAM(GBU-31), SPICE -1000/2000, Bunker Buster(GBU-28)등이었는데, 외부 노출표적의 정밀파괴에는 큰 효과를 발휘했으나 탄두중량의 한계로 지하 깊숙이 위치한 핵시설 타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정밀폭격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자국 내 지하핵시설이 여전히 건재하다 주장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이들 시설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미국이 보유한 GBU-57 벙커 버스터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GBU-57은 총중량 13.6톤, 탄두중량 2.1톤에 길이 6.2m의 대형관통폭탄(MOP: Massive Ordnance Penetrator)으로 지하 60m까지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직 사용된 적 없음)
이 엄청난 무기를 탑재하고 투하할 수 있는 폭격기로는 B-2 스텔스기가 유일한데, 30-35km 사거리의 GBU-57을 적 표적 부근 상공으로 은밀히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큰 무장탑재능력과 함께 스텔스 기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비 스텔스기인 F-15가 이런 크기의 폭탄을 기체외부에 장착한다면 RCS 증대로 인해 투하 하기도 전에 요격되고 말 것이다. 물론, F-15의 최대 무장량은 13.4톤으로 GBU-57를 달고는 이륙조차 어렵다. B-52 또한 탑재능력은 충족되나 주로 외부에 무장을 장착하도록 설계돼 GBU-57의 하중을 견딜 수 없고, 게다가 투하방식도 완전히 달라 구조적으로 불가하다.
반면, B-2 폭격기는 내부무장창(large rotary and linear bays)을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한번에 2개까지 탑재할 수 있고 스텔스 기능을 활용해 1.5 - 2km의 고고도에서 투하가 가능해 투하거리 및 폭발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란 핵시설 공격에 대해서는 사실상 묵인하였으나 전쟁이 확대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대신 트럼프 특유의 압박과 회유를 통해 이란의 자발적 핵포기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폭격에 가장 민감한 국가는 북한일 것이다. 앞으로 있을 지 모를 미국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트럼프의 이란 핵문제 대응방식을 주의깊게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만에 하나, 미국이 GBU-57 벙커 버스터를 이란 핵시설 공격이나 리더십 제거에 사용한다면, 북한 김정은으로서도 현재의 핵심시설을 더 깊고 튼튼한 지하에 구축해야 할지 고심이 깊어질 것이다.
<용어설명>
# 폭격: 항공기에서 폭탄(bomb)을 투하해 공격
* 포격: 포사격을 통해 포탄(shell)으로 공격
# Bunker Buster
. ‘벙커 파괴자’ 의미의 지하벙커 파괴용 폭탄,
. 특정폭탄을 지칭한 용어가 아니고 지하벙커 파괴용 폭탄을 총칭하는 일종의 별칭(별명)
# 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 합동직격무기. 자유낙하 저가 폭탄에 유도키트를 달아 유도무기(guided bomb)처럼 이용가능한 폭탄. 정확도가 높아 비용 대 효과 면에서 탁월
# GBU-28(Guided Bomb Unit): 벙커 파괴용 (벙커 버스터) 유도미사일. 콘크리트 6m 관통
# GBU-31: JDAM, 2천 파운드(약900kg)폭탄. 1.8m 두께 파괴 가능
# SPICE(Smart, Precise Impact, Cost-Effective):이스라엘 개발 AI기반 유도폭탄
# SEAD(Suppression of Enemy Air Defense) 시드, 적 방공망 제압
#Air Superiority:공중우세, Air Supremacy/Dominance 제공권, 공중지배
# MOP(Massive Ordnance Penetrator): GBU-57 벙커 버스터 지칭
# RCS(Radio Cross Section): 레이더반사면적
한국국가이익연구소(KINI) 소장 박영준
(이글은 미국이 GBU-57 벙커버스터를 사용하기 전인 6.18일에 작성되었으며, 카톡채널 'K-국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9일 이재명 정부 첫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이종석 후보자가 간첩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관련내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간첩법 개정안은 과거 2004년 노무현 정부 시기 열린우리당이 처음으로 입법발의 하였는데, 이 후보자(현 국정원장)는 참여정부에서 통일부장관 겸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간첩법 개정의 핵심내용은 형법상 간첩죄 성립요건인 ‘적국’ 규정을 ‘외국’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우리 형법 98조에는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간첩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변화된 시대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형법 98조는 1953년 9월에 최초 제정되었는데 6.25전쟁 직후인 당시 상황에서 북괴는 당연히 ‘적국’이었고, 남파 간첩이나 무장공비 혹은 이들에 대한 동조자가 실체적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해체와 함께 동서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공산주의가 역사의 종언(프랜시스 후쿠야마)을 고하였고, 이는 우리에게 한-러(1990) 및 한-중(1992) 수교로 나타났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 이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세계는 이념기반의 제로섬(zero sum)식 대결에서 상호이익에 기반한 경제협력으로 옮아가는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집중하고 있었다. 2004년 발의된 간첩죄 개정안은 비록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으나, 이런 시대상황을 반영한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간첩죄의 성립요건을 ’적국‘으로 한정할 경우 외국으로부터의 다양한 체제위협 시도들을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법적 공백상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표적 사례가 정보사 비밀유출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정보사 군무원이 2017년부터 돈을 받고 수십 건의 군사비밀을 중국에 넘겨오다 적발되었는데, 북한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해 ‘간첩죄’ 대신 ‘군사기밀누설죄‘와 '일반이적죄’ ‘뇌물수수죄’ 등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유출된 비밀 중에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블랙요원(신분위장 비밀요원) 명단과 정보사 조직도 및 직위자 인적사항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유사 사례로, 삼성전자 전직 부장 출신이 중국 반도체 회사로 이직하면서 18나노D램 공정기술을 유출하여 최대 10 조 원 규모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으나 간첩죄가 아닌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이 적용되어 고작 징역7년이 선고된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우리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끼치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적국’, 즉 북한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형법 98조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렇듯 현재의 법령으로는 우리 국가이익을 지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외국의 산업스파이와 사이버 해킹 활동, 그리고 외국과 연계된 내국인들의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정보유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적국’ 규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우리 국익에 반하는 ’외국‘에는 중국,러시아 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2004년에 반대했던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이 최근에는 개정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적국‘ 규정을 ’외국‘으로 개정할 경우 북한에 집중된 국민들의 안보위협 인식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개정을 환영할 법한 시민단체와 노조 등에서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우려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에는 국정원의 권한이 약해서 찬성했는지, 아니면 현재는 외국의 간첩활동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가는 우리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미흡한 부분은 입법과정을 통해 보완하되 여야를 불문하고 특정 집단의 narrative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OECD 국가 중 간첩죄 구성요건을 ‘적국’으로 규정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간첩죄가 명문화 되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25. 7. 9
한국국가이익연구소(KINI) 소장 박영준
(이 글은 카톡채널 'K-국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